사랑은 어려운 맛_사랑에 대한 선언들

햇살같던 미소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나를 찌르는.
반짝이며 터지던 폭죽이, 이내 연기를 내며 재가 되는.

전 연인의 가장 행복한 미소와 마지막 순간의 차가운 눈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나에게 가장 큰 폭죽같은 사랑을 선물해준 사람은 전연인 H다. 물론 폭죽이 크고 화려할수록 불꽃놀이 후의 재는 더 크고 검다. 스파크 튀는 사랑을 경계하겠다 다짐했던 이유는 직전의 연인 H와의 기억에 대한 방어기제 때문이다. 그의 차가운 칼날 같은 눈빛, 처음 사랑에 도취되어 몽롱했던 눈빛… 모두 보고 싶지 않다. 그 관계의 양상이나 특징을 보여주는 관계는 모두 피하고 싶다.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것은 H가 아닌 K 때문이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K는 그날 밤의 내 모습에 깊이 감명 받았다며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꽤나 예술적이고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그의 솔직하고 당돌한 고백을 마주했을 때 나는 저 멀리 도망쳤다. H의 도취된 눈이 떠올라 코가 시큰해졌고 또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었다. 도망치며 생각했다. 과연 그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 맞았을까? H는 사랑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었다… 그 그림속에 나는 원하는 박자에 탬버린을 쳐주던 조연 나부랭이가 아니였나. 여하튼, 그리하여 스파크 튀는 사랑은 나에게서 ‘절대금지’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 

과거의 연인 S에게 진실을 고백 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른 이들에게 차갑고 뾰족 했지만 나에게는 오후 2시의 햇살만큼이나 따듯했던 S. 문득 만나자고 물어본 그의 연락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오랜만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S는 내가 평생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과연…나는 의아했다. 도무지 그가 생각하는 나의 역할을 견디고 있기란 쉽지 않았다.

S와 헤어진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내 자신을 속인건지, 아님 내 자신도 정말 몰랐던 것인지, 그 사람에게 헤어지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에야 그때를 되돌아보면, 당시 내 마음 속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었구나 싶다. 이 사실을 S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고. 

그 날 저녁, 마지막에 변하던 S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차갑게 식던 그 눈빛… 하지만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걸…

나는 나의 다른 단면을 꺼내 보여줬고, 마침내 그가 그렸던 그림 속 나에겐 균열이 생겼다. 아마 균열이 생긴 나를 당신은 받아들일 수 없겠지. 진실을 말하던 그 날은 어쩌면, 내가 내 자신을 받아들이는 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깨진 접시같은 나를.

스파크 튀는 사랑은 주로 ‘~하기 때문에’에서 시작된다. 대게는 당신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라고 운을 띄우며 시작되곤 하지.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는 사랑을 하려한다. 나는 매력적 단면을 일부러 꺼내보이지 않는다. 사랑받지 않는 상태의 내 자신도 괜찮다. 나의 여러 면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만큼, 나도 다른이의 여러단면을 받아 들이고 싶다. 발정기의 공작새 마냥 뽐내며 연기하기 싫다. 빤짝이는 진열장의 접시같이 나를 사랑하고 싶지 않다. 깨져서 이가 나간 접시같은 내 자신을 사랑하려 한다. 사랑은 가장 화려하지 않은 순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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